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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희의 윤희되기 (1) – 임대형 감독의 영화 <윤희에게>
    은지/글로그 2020. 6. 10. 22:58

     

     

    1. 소수자의 소수자 되기

     

       少數者, 적을 소, 셈 수, 놈 자자를 써서 ‘소수자’라고 한다. 이를 한자어 표현 그대로 ‘수가 적은’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로 이해해서 일어난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 언론정보전공 수업을 들었을 때 일이었다. 교수님은 소수자 집단들을 열거하며, 미디어에서 다루는 소수자의 모습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갑자기 교수님 목소리만이 가득 찬 강의실 안을 한 학우의 목소리가 가로질렀다.

     

      “교수님, 여성이 왜 소수자인가요?”

     

      60여명의 수강생 모두에게 잊지 못할 장면이었을 것이다. 교수님의 표정 때문이었다. 교수님의 눈빛은 ‘사회과학하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나’ 하는 것만 같았다. 몇 초간의 정적으로 가라앉았던 강의실은, 질문한 학생을 바라보며 소수자 개념을 또박또박 짚어주는 교수님의 목소리로 차올랐다.

     

      그가 수업에서 여성이 소수자임에 의문을 품었던 이유를 몇 가지 추측해본다. 첫 번째로는, 질문한 학우가 소수자를 한자어 그대로 직역해서 이해했을 가능성이다. ‘그래서 적은 수의 사람들이 아니면 뭔데?’ 누군가 답답함을 표한다면,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정의를 빌리겠다. 들뢰즈에 의하면 소수자란 양적으로 적다는 개념이 아니라 권력을 차지한 이들, 즉 다수자로부터 타자화 되어 있는 이들을 가리킨다.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해보건대, 그는 다수자로서 소수자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다. 들뢰즈는 소수자가 다수자 사회에서 배제·종속된다고 했다. 질문한 학우가 소수자 집단이 겪는 고통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교수님의 다소 격양된 답변과, 그 교수님의 눈빛에 공감했던 내 감정이 시작된 지점도 비슷하다. 소수자가 비표준화되는 고통을 직시하고 보듬어야할 공동체의 의무가 있음에도, 누군가는 소수자가 고통 받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에 대한 슬픔에서부터이다.

     

      이 의무에 고요하게, 그렇지만 힘 있게 함께 하는 영화가 있다. <윤희에게>, 임대형 감독의 2019년 작품이다. <윤희에게>는 소수자로서 표준화된 세상의 객체로 살아온 윤희를 제시한다. 그 학우의 질문처럼 ‘그래서 윤희가 왜 소수자인데?’ 혹은 ‘어떤 소수자인데?’하고 묻는다면 대답하지 않겠다. 다만 들뢰즈가 전통적인 다수자 집단으로 '남성, 성인, 이성애자, 도시 거주자'를 차례로 꼽았다는 귀띔을 해두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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