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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희의 윤희되기 (2) – 숨김의 대상과 가까워지기
    은지/글로그 2020. 6. 10. 23:16

    <윤희의 윤희되기>

    1. 임대형 감독의 영화 <윤희에게> https://writeeun.tistory.com/39

     

     

     

    2. 숨김의 대상과 가까워지기

     

     

     

      윤희는 영화가 시작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등장한다. 영화는 일본의 공간에서 시작해서, 한국에서 등장할 대부분의 조연들을 조망한다. 그리고 나서야 스크린에 등장한 윤희는 아무 말이 없다. 주인공이지만 ‘윤희’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은 9번, 그 마저도 대화의 대상으로 직접 불리는 것은 단 3번이다. 세 번 중 처음으로 윤희가 ‘윤희’로 불리는 순간은 이혼한 남편 인호에 의해서다. “윤희야” 하는 부름에 그는 찡그리며 “깜짝 놀랐잖아”라고 답한다. 이것이 윤희의 첫 대사이다.

     

      화려하게 등장해야할 주인공이 타자의 충격에 의해 불가피하게 첫 대사를 관객에게 선보였다. 눈치 챈 것처럼 그는 무기력하다. 소수성을 숨기고 일반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모습을 담기 위해 영화는 초반에 주로 롱샷이나 풀샷을 이용해 그를 불필요하게 작게 만든다. 영화는 윤희가 일상을 마치고 담배를 피며 겨우 숨을 틔우는 장면에서조차 자비가 없다. 주인공을 화면 구석에 두고서는, 옆의 전봇대보다 가늘고 볼품없이 묘사한다. 윤희와 관객 사이에 늘 장벽 같은 사물이 놓여있다는 점도 관객을 답답하게 한다. 윤희의 일상을 묘사하기 위한 장면들은 늘 장애물로 가로막혀 있다. 통근 차량 안에서는 앞좌석에 의해, 일을 할 때는 배식구에 의해, 퇴근 할 때는 아파트 현관 유리문에 의해, 심지어 자신 집에서 저녁밥을 먹을 때도 불룩 튀어나온 거실의 벽에 의해 가로막힌 윤희와 관객은 소통하기 어려운 상태로 출발한다.

     

    윤희의 첫 등장

     

      윤희와 관객 사이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지점은 윤희가 쥰의 편지를 발견한 때이다. 영화에서 쥰의 편지는 엄청난 장치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편지를 읽는 쥰의 내레이션이 영화의 중심을 굵직하게 관통한다. 다양한 글의 유형 중 편지 형식이라는 점이 다소 조용한 이 영화를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편지가 오직 한 사람을 위한 글이라는 점이 그렇다. 다수자들의 권위 속 시들하게 객체로 살아가는 윤희를 특별한 한 사람, 즉 주체로 만든다. 윤희도 편지를 개봉하며 자신의 주체성을 조금씩 터뜨린다. 이 때 영화의 시점 또한 윤희의 시선으로 바뀐다. 고통스러운 삶의 원인을 갑자기 자각한 것처럼, 윤희는 그동안 아프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손목을 과하게 주무르고, 이 불안함에 관객은 함께하기 시작한다.

     

      윤희가 본격적으로 주체되기를 시작하는 것은 영양사에게 사실상 퇴사와 같은 휴가를 통보하는 장면이다. 윤희는 어색하게 화를 내고서 급식소를 빠져나온다. 관객은 그 뒷모습만을 바라본다. 미디움샷으로 음성 없이 윤희가 큼직큼직한 걸음을 걷는 장면이 상당 시간 지속된다. 이 장면에서 관객과 윤희는 장벽 없이 가까워진다. 카메라는 핸드헬드 기법으로 윤희를 바짝 뒤따라간다. 한껏 윤희의 뒷모습을 흔들며 따라가는 카메라는 윤희의 표정을 담지 않는다, 그러나 윤희와 장벽없이 조우하게 된 관객은 그 뒷모습에서 혼란함 속 홀가분함을 함께 느끼게 된다. 이어서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짓는 윤희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관객과 윤희의 벽은 모두 허물어진다.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

     

      쥰이 편지에 쓴 구절처럼, 영화 속 겨울은 윤희에게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진 계절이다. 새봄과 오타루 여행 도중 캐리어를 옮기다가 손목을 주무르는 윤희를 보고 새봄은 병원에 가라고 한다. 참고 있는지도 몰랐던 고통이 가시화되고, 해소해야 할 시점임을 알리는 것처럼. 이 여행은 다수자 집단의 객체로 살아왔던 괴로움을 해소하는 과정이다. 많은 영화에서 여행은 주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으로 그려지고, 이를 위해 과거 회상 장면이 여럿 삽입된다. 그러나 <윤희에서>는 과거 회상을 위한 시간을 한 순간도 허용하지 않는다. 윤희의 성정과도 유사하다. 그저 현재에 충실하는 방식으로 과거와 투쟁하고 자신을 복원한다. 그래서 관객은 극이 끝나기 직전까지 윤희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거의 얻지 못한다. 그저 윤희가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관객은 소수자로서 상처 받았을 그의 과거를 추측하고, 이입하며 함께 해소할 뿐이다. 대신 감독은 이 과정 중 윤희를 관객과 더욱 친밀하게 만든다. 여행 첫 일정으로 쥰의 집 앞에 가는 대담함, 벽에 숨어서 손으로 입을 막을 때의 긴장감, 이어 택시에서 쏟아내는 오열을 미디움 샷과 클로즈업 샷을 통해 호흡까지 함께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 공감의 장에서 그 어떤 장애물도 관객과 윤희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윤희가 주체의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의 절정에는 쥰과 재회 장면이 있다. 이때 윤희는 관객 앞에 자신의 세계를 완성한다. 두 번째로 영화 속에서 윤희의 이름이 불리는 것은 쥰이 재회 장면에서 “윤희니?”하고 부르는 때이다. 이 씬은 오버더숄더샷의 연속으로 구성된다. 이 씬에서 관객은 여행 내내 친밀감을 쌓아온 윤희를 쥰에게 보내준다. 긴 러닝타임 끝에 만난 둘 사이에 장애물은 없다. 카메라조차 그 사이에 들어가지 않고, 관객도 둘의 외부에 존재한다. 그럼으로써 관객은 더욱 둘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윤희는 초반 자신을 막아서는 장애물을 넘어 관객 앞으로 다가갔으며, 나아가 자신 세상 안에 쥰을 놓음으로서 스스로를 완성한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윤희’라 불리는 것은 인호에 의해서이다. “윤희야”하고 불리는 아파트 씬은 완벽하게 다수자의 시스템 속에서 해방되는 지점이다. 인호의 재혼 고백 이후, 둘은 롱샷에 의해 한 샷 안에 각각 온전히 담긴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던 둘은 인호가 청첩장을 건네며 둘은 사적 거리로 가까워진다. 비로소 그들은 롱샷 안에서 완전한 이별을 통해 진정한 관계를 맺는다.

     

      힘 있게 영화를 이끌던 장치가 쥰이 읽는 편지 내레이션이었다면, 여행 이후 영화를 마무리하는 것은 반대로 윤희가 읽는 편지 내레이션이다. 과거 정보를 전혀 제공하지 않던 영화가, 극이 끝나기 직전 윤희의 목소리로 자신이 소수자로서 살아온 과거의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넌지시 간접적 표현들로 멋을 내던 영화는, 끝나기 직전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다급하게 극을 마무리하려는 것인가 오해할 정도로 윤희의 편지는 상세한 사건들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윤희가 자신의 본래 주체성을 획득하는 과정, 관객과 가까워지는 과정을 고려하면 윤희의 편지는 극을 마무리하는 완벽한 장치다. 서사가 진행될수록 대담해지고, 윤희 본연의 감정을 획득한 그가 내린 결론은 자신의 과거를 직설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씬에서 그는 이력서에 윤희라는 이름을 적어내며 영화에서는 10번째로 ‘윤희’라는 이름을 언어로 표현하는 주체가 된다. 윤희는 이렇게 숨겨진 자신의 이름을 찾는다.

     

     

     

    3.윤희, 프레임 밖으로 나가다 https://writeeun.tistory.com/42
    4. 우리 모두 자신의 색이 있다 https://writeeun.tistory.com/43
    5. 숨김은 곧 드러냄이다 https://writeeun.tistory.com/44
    6. 사랑의 사랑되기 https://writeeun.tistory.com/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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