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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희의 윤희되기 (4) – 우리 모두 자신의 색이 있다
    은지/글로그 2020. 6. 10. 23:23

    <윤희의 윤희되기>

    1. 임대형 감독의 영화 <윤희에게> https://writeeun.tistory.com/39
    2. 숨김의 대상과 가까워지기  https://writeeun.tistory.com/41
    3.윤희, 프레임 밖으로 나가다 https://writeeun.tistory.com/42

     

     

     

     

    4. 우리 모두 자신의 색이 있다

     

     

     

     

     

      윤희의 여행은 ‘되기’ 철학 에 입각해 이해할 수 있다. 들뢰즈의 철학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 소수자가 말 그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소수자 되기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수자라는 중심 집단에서 주변으로 이동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소수자가 자신 소수성을 중심으로 삼음을 의미한다. 윤희가 소수자 되기를 수행하는 과정을 영화는 색을 사용하는 방식을 이용하여 관객에게 명백히 알린다.

     

      즉, 윤희가 자신을 찾는 과정은 윤희를 구성하는 색의 변화로 이해된다. 윤희는 여행 이전 한국에서 시들한 초록색으로 쌓여있다. 한국의 영상 서사에서 초록색이 생명력과 활력을 의미하는 반면, 서양에서 초록은 작품에서 주로 차별, 역겨움 등을 의미한다. 윤희의 집은 초록을 중심으로 한 그라데이션을 펼쳐놓은 듯 곳곳에 물들어 있다. 그러나 무력한 윤희의 모습을 나타내듯이 함께 빛바래 있다. 초반 윤희의 초록색은 색온도가 낮아 차가운 느낌으로 묘사된다. 서양에서 이해하는 초록과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따뜻하고 붉은 끼가 도는 일본의 쥰의 집에서 갑자기 윤희의 집으로 장면이 전환되었을 때 숨 막히고 차가운 느낌이 들 정도이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윤희 편지의 한 구절처럼, 윤희의 초록은 잘못이 없다. 기차 안 윤희는 어두운 초록빛 목도리를 매고 여행에 나선다. 그리고 환한 초록 기차 안에 몸을 맡겼음을 알리며 일본에 도착한다. 앞서 밝힌 것처럼 일본여행은 윤희의 주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윤희는 막바지에 초록빛이 도는 하늘색까지 치닫는다. 그런 색의 스카프를 매고, 같은 색의 귀걸이를 집는다. 색의 밝기가 올라가고, 색온도도 높아진다. 기존의 소극적이고 사회의 요구에 수긍하던 윤희는, 본래 냉소적이고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본래 자신의 색을 밝혀나간다. 윤희는 일본 여행의 끝에서 초록, 자신 색에 한껏 채도를 높였다.

     

     

      쥰과의 재회장면에서 윤희는 녹색 빛이 감도는 하늘색 스카프를 매고 있다. 쥰은 어두운 적색 코트를 입고 있다. 쥰은 재회장면 직전까지 주로 새까만 차림으로 등장한다. 첫 등장에서 새하얀 설원에서 온통 까만 차림의 쥰은 오히려 빛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서 검정의 쥰도 윤희를 만남에서는 채도를 높인다. 윤희의 딸인 새봄을 만날 때 윤희의 색인 청색을 목에 두르기도 했으며, 윤희와 재회할 때는 다소 어두운 색이지만 적색의 겉옷을 입고 윤희 앞에 선다. 쥰에게 색이 부여되는 것은 까만색으로 일관하던 쥰에게 용기가 필요한 일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는 색으로 단순히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색깔에 역할을 부여한다. 그리고 또 다시 초록을 선택하면서 동시에 색상 차이가 가장 큰 보색인 빨강에 막강한 지위를 불어넣는다. 영화는 관찰 주체에게 빨강을 입힌다. 그리고 관찰 대상에는 초록색을 내도록 한다. 줄곧 빨간 목도리를 한 새봄이 관찰자의 입장이고, 새봄의 시선에서 관찰 대상인 초록빛 윤희가 분명히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이 색을 통해 명백하게 밝혀진다. 영화 초반에서 관객에게 탐색 당하듯 등장하는 새봄과 경수는 초록색 목도리와 후드티를 입고 있다. 그러나 이내 새봄은 질문을 던지는 자로서 빨강 그 자체가 된다. 새봄의 시선에 의해 파헤쳐지는 대상들은 모두 윤희와 함께 녹색으로 그려지며 새봄의 빨강과 강한 대비를 이룬다. 윤희처럼 일관되게 초록빛을 띄는 인물이 있다면, 새봄의 연인인 경수이다. 경수는 기존의 윤희처럼 헌신, 조력, 기다림의 속성으로 이해되기에 초록이고, 동시에 일본에서 숨겨진 존재라는 점이 그를 완벽한 초록으로 정의한다. 줄곧 초록색 의상을 입으며, 비밀로 묵고 있는 그의 숙소도 온통 초록색으로 꾸며져 있다. 쥰의 고모도 새봄과 함께 등장할 때에는 질문의 대상으로서 쭉 초록색 의상을 입고 있다. 새봄이 쥰을 만날 때에도 쥰은 청색 머플러를 매면서 빨간색 새봄 시선에서 기꺼이 객체가 된다. 그러나 새봄의 빨간색이 무례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유지하는 거리 때문이다. 그는 숨긴 감정을 드러내게 하는 역할에 충실하지만 관찰 대상에게 여유롭게 거리를 유지한다. 무심해 보일 정도로 거리를 두면서 일부 장면을 제외하고는 윤희에게까지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한다.

     

     

      줄곧 빨강이던 새봄은 한국에서 이사 장면을 마지막으로 관찰자로서의 필요를 잃는다. 멀찍이 시계탑에서의 윤희와 쥰의 재회를 지켜보던 새봄은 빨강으로서 임무를 완수한다. 그러자 그 표정에서 허탈함이 비춰지기도 한다. 쥰에게 아버지의 공백이 윤희를 불러 일으켰듯, 새봄에게 엄마의 주체성을 되찾아주는 역할이 떠나간 후에는 그 공백이 표정으로 드러난다. 그렇지만 이내 경수와 만나는 장면이 이를 채운다. 그러나 새봄은 경수와의 사랑만으로 채워지는 인물은 아니다. 새봄도 한국에 돌아와 자신의 색을 찾는다. 샛노란 옷을 입고서 말 그대로 새로운 봄의 빛을 뿜으며 다시 등장한다. 윤희가 새 도전을 앞둔 마지막 장면에서도 새봄은 윤희에게 든든한 조력자이지만 끝까지 멀찍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 때 이 거리를 극복하고 둘을 끈끈하게 잇는 것은 밝은 초록색으로 빛나는 새봄의 머리카락의 브릿지이다. 여행의 결과 윤희는 자신을 되찾았고, 새봄은 어머니로부터 초록색이라는 유산을 물려받았다. 영화는 갈등에 직면한 새봄과 경수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 귀띔조차해주지 않고서 극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관객은 초록색 머리 몇 가닥을 보고서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엄마처럼 알을 깨고 자신되기를 수행할 것이라는 새봄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다. 이 용기의 되물림이 그 답이다.

     

     

      새봄이 빨강으로 정의되지 않듯이, 윤희도 초록만으로 정의되지는 않는다. 윤희가 초록 또한 여행을 통해 생명력과 싱그러움을 되찾지만 영화조차 자신의 주체가 된 윤희를 정의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이력서를 쓰는 장면에서 윤희는 다시 온통 무채색으로 무장한다. 그를 물들이던 초록과 파랑도 모두 사라졌다. 그는 아무 색도 없는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 더 이상 초록, 관찰 대상일 필요도 없어진 것이다.

     

     

     

    5. 숨김은 곧 드러냄이다 https://writeeun.tistory.com/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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