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글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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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올드해질 때은지/글로그 2020. 8. 8. 20:41
2020-08-06 작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3·1운동 100주년 전시는 파격이었다. 전시는 오로지 ‘신문’으로만 구성되었다. 광화문 중심에서 근대사를 보존하는 국립 박물관으로서 100년이 지난 3·1운동을 기리는 특별전을 기획하려니 고심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 박물관은 3·1운동을 기념하는 상징물로서 신문만을 가득 채웠다. 『독립신문』, 『제국신문』, 『황성신문』 등 굵직한 민족 신문부터, 올해 100주년을 맞은 『동아일보』, 『조선일보』 속 지면의 빽빽한 글씨들이 확대되어 배치되었고, 관람객들에게 독립 운동의 목소리를 전했다. 당시 현실의 정보를 전달하고자 했던 신문이 100년이 지나서는 역사를 전달하는 사료이자, 그 존재 자체로 민족 정신을 기리는 유물이 된 것이다. 신문은 본질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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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의 윤희되기 (6) – 사랑의 사랑되기은지/글로그 2020. 6. 10. 23:30
1. 임대형 감독의 영화 https://writeeun.tistory.com/39 2. 숨김의 대상과 가까워지기 https://writeeun.tistory.com/41 3. 윤희, 프레임 밖으로 나가다 https://writeeun.tistory.com/42 4. 우리 모두 자신의 색이 있다 https://writeeun.tistory.com/43 5. 숨김은 곧 드러냄이다 https://writeeun.tistory.com/44 6. 사랑의 사랑되기 소수자의 ‘소수자 되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존재’가 곧 ‘차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사람 각자에 차이가 존재함이, 사람 각자를 있음케 함이다. 그래서 영화는 극 중 모든 사랑의 양상을 평행 이론처럼 비슷하게 펼쳐놓다가도 또 인물 각자의 특별함으로 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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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의 윤희되기 (5) – 숨김은 곧 드러냄이다은지/글로그 2020. 6. 10. 23:26
1. 임대형 감독의 영화 https://writeeun.tistory.com/39 2. 숨김의 대상과 가까워지기 https://writeeun.tistory.com/41 3.윤희, 프레임 밖으로 나가다 https://writeeun.tistory.com/42 4. – 우리 모두 자신의 색이 있다 https://writeeun.tistory.com/43 5. 숨김은 곧 드러냄이다 인물들의 정체성은 색만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영화 에서 캐롤과 테레즈의 의상의 색감과 장식이 인물 간 대비되는 성격과 삶의 환경을 표현했듯이, 또한 색과 더불어 장식이나 소품을 통해 서사와 인물에 의미를 부여한다. 윤희는 극 초반, 한국에서 얇은 옷을 여러 겹 껴입고 등장한다. 윤희 마음 속 숨겨왔던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의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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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의 윤희되기 (4) – 우리 모두 자신의 색이 있다은지/글로그 2020. 6. 10. 23:23
1. 임대형 감독의 영화 https://writeeun.tistory.com/39 2. 숨김의 대상과 가까워지기 https://writeeun.tistory.com/41 3.윤희, 프레임 밖으로 나가다 https://writeeun.tistory.com/42 4. 우리 모두 자신의 색이 있다 윤희의 여행은 ‘되기’ 철학 에 입각해 이해할 수 있다. 들뢰즈의 철학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 소수자가 말 그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소수자 되기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수자라는 중심 집단에서 주변으로 이동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소수자가 자신 소수성을 중심으로 삼음을 의미한다. 윤희가 소수자 되기를 수행하는 과정을 영화는 색을 사용하는 방식을 이용하여 관객에게 명백히 알린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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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의 윤희되기 (3) – 윤희, 프레임 밖으로 나가다은지/글로그 2020. 6. 10. 23:19
1. 임대형 감독의 영화 https://writeeun.tistory.com/39 2. 숨김의 대상과 가까워지기 https://writeeun.tistory.com/41 3. 윤희, 프레임 밖으로 나가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헤르만헤세의 속 구절은 많은 이들이 인용하는 매력적인 글귀이다. 1919년도 작품의 구절이 여전히 인기 많은 인용구로 사용되는 것은 많은 삶을 관통하는 원리를 담고 있어서다. 윤희의 삶 또한 그렇다. 헤르만헤세의 새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해 보인다. 첫 번째로, 알 속에서 자신이 새임을 자각해야한다. 두 번째로, 알 속에서 나와야한다. 그래야 새는 새가 된다. 앞서 밝힌 것처럼 윤희는 억눌러왔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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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의 윤희되기 (2) – 숨김의 대상과 가까워지기은지/글로그 2020. 6. 10. 23:16
1. 임대형 감독의 영화 https://writeeun.tistory.com/39 2. 숨김의 대상과 가까워지기 윤희는 영화가 시작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등장한다. 영화는 일본의 공간에서 시작해서, 한국에서 등장할 대부분의 조연들을 조망한다. 그리고 나서야 스크린에 등장한 윤희는 아무 말이 없다. 주인공이지만 ‘윤희’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은 9번, 그 마저도 대화의 대상으로 직접 불리는 것은 단 3번이다. 세 번 중 처음으로 윤희가 ‘윤희’로 불리는 순간은 이혼한 남편 인호에 의해서다. “윤희야” 하는 부름에 그는 찡그리며 “깜짝 놀랐잖아”라고 답한다. 이것이 윤희의 첫 대사이다. 화려하게 등장해야할 주인공이 타자의 충격에 의해 불가피하게 첫 대사를 관객에게 선보였다. 눈치 챈 것처럼 그는 무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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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의 윤희되기 (1) – 임대형 감독의 영화 <윤희에게>은지/글로그 2020. 6. 10. 22:58
1. 소수자의 소수자 되기 少數者, 적을 소, 셈 수, 놈 자자를 써서 ‘소수자’라고 한다. 이를 한자어 표현 그대로 ‘수가 적은’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로 이해해서 일어난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 언론정보전공 수업을 들었을 때 일이었다. 교수님은 소수자 집단들을 열거하며, 미디어에서 다루는 소수자의 모습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갑자기 교수님 목소리만이 가득 찬 강의실 안을 한 학우의 목소리가 가로질렀다. “교수님, 여성이 왜 소수자인가요?” 60여명의 수강생 모두에게 잊지 못할 장면이었을 것이다. 교수님의 표정 때문이었다. 교수님의 눈빛은 ‘사회과학하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나’ 하는 것만 같았다. 몇 초간의 정적으로 가라앉았던 강의실은, 질문한 학생을 바라보며 소수자 개념을 또박또박 짚어주는 교수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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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었다, 말하는 것은지/글로그 2020. 3. 31. 14:26
아빠차를 얻어 타고 학교에 가는 중이었습니다. 조수석에 앉아 도로 가에 촘촘히 핀 벚꽃을 보며 '벚꽃이다' 라는 말이 입을 열기 직전까지 나왔는데, 문득 그 말을 내뱉는 것과 혼자 꽃을 보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뇌는 반복을 지루해합니다. 반복에 권태를 느끼고, 권태는 고통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근래에는 보기 좋은 일상들 사이에 범죄 사건이 떠밀려 왔습니다. ‘n번방’이라는 단어 옆에 잔뜩 달린 수많은 해시태그가 불편한 사람도, 스토리를 넘길때마다 빨간 문장들의 반복이 피곤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도 사실은 알고 있을 것 입니다. 이것이 특정 사람들의 유난스러움에서 비롯했는지, 아니면 이 문제가 진정으로 있어야할 곳을 찾아 떠나가길 바라는 위급한 마음으로부터 왔는지 말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