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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희의 윤희되기 (5) – 숨김은 곧 드러냄이다
    은지/글로그 2020. 6. 10. 23:26

     

    <윤희의 윤희되기>

    1. 임대형 감독의 영화 <윤희에게> https://writeeun.tistory.com/39
    2. 숨김의 대상과 가까워지기  https://writeeun.tistory.com/41
    3.윤희, 프레임 밖으로 나가다 https://writeeun.tistory.com/42
    4. – 우리 모두 자신의 색이 있다 https://writeeun.tistory.com/43

     

     

     

    5. 숨김은 곧 드러냄이다

     

     

      인물들의 정체성은 색만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영화 <캐롤>에서 캐롤과 테레즈의 의상의 색감과 장식이 인물 간 대비되는 성격과 삶의 환경을 표현했듯이, <윤희에게> 또한 색과 더불어 장식이나 소품을 통해 서사와 인물에 의미를 부여한다. 윤희는 극 초반, 한국에서 얇은 옷을 여러 겹 껴입고 등장한다. 윤희 마음 속 숨겨왔던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듯 다층적이다. 인호가 세 번의 등장 모두 두꺼운 점퍼 한 겹 차림으로 윤희 앞에 서는 것과 대조적이다. 등장하는 장면마다 자신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차림새가 적합해 보인다. 여행에 나서면서 윤희의 차림새는 이전과 달라진다. 숨겨온 사실들을 벗겨낼 준비가 된 듯 얇은 코트 하나만을 입고 있다. 다시 한국에 와서는 두껍고 큰 패딩 하나를 입은 차림으로 등장한다. 삶 속에서 자신을 억압한 권력자들을 덜어내고서 윤희가 입고 나타난 두껍고 큰 패딩은 결연함과 하나의 큰 믿음 같이 느껴진다. 두꺼운 패딩 속 윤희를 관객이 처음으로 마주할 때 윤희의 내레이션 중 이런 대목이 겹쳐진다.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옷차림의 변화는 그 말에 확신을 더한다.

     

     

      이처럼 윤희의 숨겨왔던 감정과 정체성은 넌지시 제시된다. 숨김이 존재함은,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윤희에게 감춰진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표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많은 사람들이 대화 중 성관계를 일컬을 때 ‘성관계하다’ 혹은 ‘섹스하다’ 대신 ‘자다’, ‘사랑을 하다’ 등으로 돌려 말하는 것을 떠올려본다. 성관계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청자에게 자신이 원색적이거나 무례하다는 오해를 받을 가능성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이제 막 객석에 앉아 윤희를 마주한 관객을 대하는 감독의 태도 또한 비슷하다. 소수자의 고통은 잘못이 없다. 그러나 이를 표현함에 있어서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윤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은유’를 선택한다. 그리고 이내 은유가 탁월한 표현 기법 중 하나임을 증명한다. 베드신을 꼭 넣고 싶었다는 감독이, 베드신 없는 영화로 그들의 사랑을 마무리한 이유도 이와 같을 것이다. 영화는 관객이 비유와 상상만으로 윤희의 사랑을 충만히 그려내도록 수많은 상징들을 사용한다.

     

      가장 중요한 상징물을 꼽는다면 단연 ‘눈’이다. 윤희가 ‘윤희되기’를 행하는 과정에서 눈은 특별하다. 영화에서 눈은 ‘가림’의 상징으로써 내린다. 한국에서 새봄은 “왜 이렇게 눈이 안오냐”며 윤희의 가려진 고통을 해소하고자 오타루 여행을 제안하려 한다. 고모는 오타루에서 습관처럼 “눈이 언제 그치려나”라는 대사를 읊조리며 숨겨왔던 쥰의 상처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또 치유되길 소망한다. 처음에 눈은 인물들에게 역경처럼 버겁게 켜켜이 쌓여있다. 한국의 모녀가 일본의 설원을 걸는 장면에서 발이 푹푹 꺼지는 섬세한 연출과, 힘겹게 숨을 내쉬는 배우들의 연기는 소수자의 숨겨온 고통을 마치 높이 쌓인 눈의 높이처럼 느껴지게 한다.

     

      모녀가 눈싸움을 하는 장면부터 눈은 더 이상 고난의 존재가 아니다. 낮고 비스듬한 둔덕에서 모녀는 비로소 눈을 쥐는 주체가 된다. 눈 위에서 윤희가 쥰과의 관계를 암묵적으로 고백하고, 새봄과 경수의 연애사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비밀을 드러내는 현장에서 모녀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으로 자유를 만끽한다. 비밀이 폭로된 이후 카메라는 모녀를 버드아이즈뷰로 높은 각도에서 담으며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한다. 이 기법이 기존의 영화들에서 인물을 관음의 대상이나 무력한 존재로 비췄다면, <윤희에게>는 이 카메라 기법의 또 다른 훌륭한 기능을 증명한다. 인물의 숨겨왔던 정체성을 해체하는 순간에서 둘을 하나로 담아낸다는 점이다.

     

     

      이어서 다음 장면으로 눈을 삽으로 치우는 쥰과 고모가 등장한다. 눈을 치우는 행위가 의미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누군가 거닐 일을 대비해 길을 닦는 것처럼, 쥰이 윤희를 맞을 마음의 준비를 의미한다. 또한 가리워진 쥰의 감정이 피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고모는 말버릇처럼 “눈이 언제 그치려나” 라는 대사를 읊조린다. 쥰은 이에 “왜 그런 쓸데 없는 말을 해, 여기서 산 지 몇 년짼데”라며 대꾸한다. 눈으로 길이 가려진 것처럼, 정체성이 숨겨지는 과정은 쥰에게 익숙하고 담담한 일이다. 고모는 이어 “막막하니까”라며 일종의 주문이라고 말한다. 불어난 쥰의 상처는 고모에게도 막막한 태산과 같으며, 주문을 걸어 사라지기를 소망하는 대상이다. 쥰은 농담을 던지며 “힘 없는 할머니는 쉬고 계세요. 내가 얼른 할게.” 하고는 눈을 치운다. 고모는 한동안 쥰을 그윽한 눈으로 쳐다본다. 이 장면은 쥰이 윤희와의 만남에서 적극적인 주체로 나설 것임을 암시한다. 실제로 고모는 이후에는 조력자로서 특별한 역할 없이 그저 쥰과 윤희의 관계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존재로 남는다.

     

      윤희와 쥰이 재회하면서 그 순간, 둘은 더 이상 숨길 사실이 없게 된다. 그리고 둘은 눈이 잘 치워진 길을 걷는다. 새봄 또한 그 시각 조력자로서 역할을 다하고 경수에게 눈이 높이 쌓인 언덕에서 “나가서 놀자”라고 말하며 설원에서 뛰쳐나간다. 재회 이후 쥰은 동네로 돌아와 고모의 말버릇을 물려받은 듯 “눈이 언제 그치려나” 하며 고모와 함께 눈이 치워진 길을 걷는다. 자신의 정체성이 숨겨지는 것을 그저 받아들이다가 이제는 현재 세상을 가려오던 눈이 그치길 원하는 것처럼. 마치 이전에 열심히 삽질을 한 것이 결실을 맺은 것처럼, 쥰과 고모가 눈이 치워진 길을 걷는 장면을 롱샷이 오랜 시간 조망하며 조력자들의 도움과 사랑의 주체 둘의 용기에 여운을 남긴다.

     

      눈과 유사한 장치들이 또 있다. 여행을 촉발하는 새봄의 날선 질문들이 시작될 때 새봄은 귤을 먹는다. 이 때 귤에 붙어있는 하얀 귤락들을 새봄이 모두 벗겨내는데, 이 또한 눈처럼 그간 가려진 정체성과 고통을 발견하는 과정이 시작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귤락의 역할을 이어받아 숨김과 드러냄의 장치를 수행하는 것은 ‘담배’이다. 윤희가 새봄에게 내색하지 않는 일상의 고통을 담배 연기로 뿜어내는 장면, 인호가 새봄이 부모의 과거를 캐물을 때 담배를 찾는 모습, 쥰이 사촌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으려할 때도 담배 연기는 뭔가 숨기고 싶어하는 인물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일본에서 캐리어를 끌고 숙소를 옮기던 윤희와 새봄이 멈춰서 설원에서 담배를 꺼내는 장면은 담배가 제 숨김의 기능을 하는 장면들 중 단연 주요하다.

     

      주저하다가 담배를 달라고 말하는 윤희의 말을 시작으로 말하지 않았던 서로의 흡연 사실이 드러난다. 이 장면은 눈싸움 장면만큼이나 후련해 보인다. 이 장면 이후, 여행 초반에 각자의 프레임에서 그려지던 모녀는 사각형의 온천 프레임 안에서 하나가 되기도 하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다가도 때로는 사적거리 안으로 가까워진다. 각각 빨강, 초록의 목도리를 풀어둔 채, 숙소 이불의 적색, 청색 체크무늬처럼, 교차한 방향으로 누워 거리를 좁힌다.

     

     

      담배를 숨겨도 그 끝자락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어딘가 냄새가 배는 것처럼 숨김은 필연적으로 드러남이 된다. 소수자로서 받은 고통은 숨기는 동시에 드러난다. 쥰도 료코에게 정체성을 숨기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담배가 쓰였지만, 이 또한 자신이 소수자로서 겪은 고통을 넌지시 드러내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윤희가 바에서 홀로 담배를 피울 때도 그렇다. 그는 과거 받은 고통에 대해 말하지 않지만, 자신이 그리던 소박한 사랑을 말하는 과정에서 담배연기와 함께 과거의 고통이 묻어난다. 그래서 담배는 결국 압수의 대상이 된다. 비밀의 고통이 없길 바라며 윤희는 새봄의 라이터를 돌려주지 않으며 ‘압수야’라고 말하고, 새봄도 경수의 담배를 보고서 ‘압수’라고 외친다. 이는 비밀을 없애려는 시도는 아니다. 아픔을 공유하고 보듬으려는 시도에 가깝다.

     

      흰색의 소품들이 주로 숨김을 의미한 것과 달리 ‘달’은 관계를 의미한다. 감독은 달에 각별한 의미를 담았다. 영화의 제목으로 ‘만월’을 고민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윤희와 쥰의 재회장면은 영화가 끝날 때 즈음 등장한다. 러닝타임 내내 둘은 서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있지만 관객은 처음부터 둘 사이를 친밀하게 느낀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달이 둘 사람을 매개한다는 사실이다. 쥰이 동물병원에 온 유기묘 이름을 ‘월(月)’이라고 지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고양이를 바라보며 “누가 이렇게 예쁜 애를 잃었을까?”, “월이 어디 숨었을까?” 등의 대사로 넌지시 과거 사랑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을 드러낸다.

     

      윤희가 일본에서 자신을 확인하는 과정 동안 달은 꽉 찬다. 이내 하늘을 보고 만월임을 가리키는 취객의 외침과 함께 달이 완성됨이 가시화된다. 만월의 순간은 둘 사이를 가려왔던 사회 장벽들이 허물어졌다는 신호처럼 등장한다. 이내 재회 장면으로 두 주인공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하나의 장치로서 자리매김한다. 영화가 끝날 때 쯤 윤희는 내레이션을 통해 쥰과의 사랑을 떠올리며 “그렇게 충만했던 시절은 또 오지 못할 거야.” 라고 말한다. ‘달’에 대한 직접적 정보를 주지 않고도 관객이 동그랗게 차오른 달을 떠올리게 한다.

     

     

    6. – 사랑의 사랑되기 https://writeeun.tistory.com/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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